야로슬라프 크레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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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멘-메렌 보호령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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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제2 공화국 제2대 총리
뵈멘-메렌 보호령 총리 권한대행
야로슬라프 크레이치Jaroslav Krejčí (체코어)
1939년 3월 16일 - 1951년 3월 5일
1930년 모습
신상 정보
출생
1887년 12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왕국/프라체요비체
사망
1946년 2월
대게르만국/프로이센 자유주/마르크 브란덴부르크/포츠담 관구/브란덴부르크 안 데어 하펠/브란덴부르크-괴르덴 형무소
최종 국적
가족
배우자마리에 베라노바
아들루돌프 베란
아들브르제티슬라프 베란
종교
로마 가톨릭
학력
스트라코니체 고등농업학교
이력 정보
당적
RSZML1922년 6월 – 1938년 11월SNJ1938년 11월 – 1939년 3월
소속
국가협조당 (NS) 1939년 3월 23일 – 1939년 4월 27일
임기 정보
체코슬로바키아 제2 공화국 제2대 총리1938년 12월 1일 – 1939년 3월 15일
전임
얀 시로비
후임
폐지
뵈멘-메렌 보호령 총리 권한대행1939년 3월 16일 - 1939년 4월 27일
전임
신설
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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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야로슬라프 크레이치(체코어: Jaroslav Krejčí)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법률가, 관료, 정치인이다. 체코슬로바키아 헌법재판소 서기와 헌법재판소장을 지냈고, 제2 공화국 말기 베란 내각에서 법무장관으로 입각했다. 독일의 체코 점령 이후에는 뵈멘-메렌 보호령 법무장관으로 유임되었으며, 알로이스 엘리아시 체포 이후 보호령 총리 권한대행을 거쳐 총리로 임명되었다.

크레이치는 하이드리히 체제 아래에서 보호령 정부의 법률·행정 업무를 담당했으나, 1943년 프랑크가 보호령 운영 전면에 나서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보호령 법률자문역으로 남았고, 1951년 보호령 해체 뒤에는 주데텐란트 대관구 법률고문으로 편입되었다. 1956년 5월 18일 라이헨베르크에서 병사했다.

생애

야로슬라프 크레이치는 1892년 6월 27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바 변경백국 크르제메네츠에서 태어났다. 우헤르스케 흐라디슈테의 체코 김나지움을 거쳐 프라하 대학교 법학부에서 공부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 후방근무에 동원되었다.

전후 크레이치는 체코슬로바키아 정부 관료로 활동했다. 1921년부터 헌법재판소 서기로 근무했고, 이후 헌법재판소 내부에서 법률 실무 경력을 쌓았다. 1938년에는 헌법재판소장에 올랐으며, 같은 해 12월 베란 내각의 법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39년 3월 독일이 체코 잔존 지역을 점령한 뒤에도 크레이치는 법무 분야에 남았다. 그는 뵈멘-메렌 보호령 성립 이후 법무장관으로 유임되었고, 엘리아시 내각에서 보호령 정부의 법률 업무를 담당했다.

보호령 총리

1941년 9월 하이드리히가 국가보호자 권한대행으로 부임하고 알로이스 엘리아시가 체포되면서 보호령 정부는 다시 재편되었다. 크레이치는 엘리아시의 뒤를 이어 총리 권한대행이 되었고, 1942년 1월 19일 뵈멘-메렌 보호령 총리로 정식 임명되었다.

크레이치 내각은 하이드리히 체제에서 보호령 정부의 남은 행정 기능을 유지했다. 크레이치는 총리와 법무장관을 겸하며 독일 당국의 명령과 보호령 내부 행정 절차를 법령 형식으로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시기 보호령 정부의 독자성은 엘리아시 재임기보다 축소되었다.

1943년 프랑크가 보호령 통치의 전면에 나서면서 크레이치의 내각은 점차 비중을 잃었다. 보호령 운영은 법무·내각 중심보다 경찰, 내무, 주민관리 중심으로 이동했고, 크레이치는 1943년 6월 12일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후임 총리에는 리하르트 비에네르트가 올랐다.

법률자문역과 말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크레이치는 보호령 법률자문역으로 남았다. 1951년 3월 5일 뵈멘-메렌 보호령이 해체되면서 크레이치는 주데텐란트 대관구 법률고문으로 편입되었다.

크레이치는 이후 정치로 복귀하지 않았고, 1956년 5월 18일 대게르만국 주데텐란트 대관구 라이헨베르크에서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