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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전쟁성 국무차관 [[페데리코 바이스트로키]]는 5월 9일 바돌리오의 보고가 [[베니토 무솔리니|무솔리니]]에게 묵살 당하자, 전쟁성을 통해 '''"동아프리카의 주둔 소요가 본토 육군 재편을 방해하고 [[대게르만국|독일]]의 급진적인 대외 정책이 오스트리아와 브레너 고개 방면을 위협할 시에 대응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무솔리니는 바이스트로키의 경고를 공식적으로 반박하지 않았지만, 더 많은 근거를 가져오라며 전쟁성 내부의 검토 사안으로 보류하라 지시했다.
5월 12일 전쟁성 국무차관 [[페데리코 바이스트로키]]는 5월 9일 바돌리오의 보고가 [[베니토 무솔리니|무솔리니]]에게 묵살 당하자, 전쟁성을 통해 '''"동아프리카의 주둔 소요가 본토 육군 재편을 방해하고 [[대게르만국|독일]]의 급진적인 대외 정책이 오스트리아와 브레너 고개 방면을 위협할 시에 대응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무솔리니는 바이스트로키의 경고를 공식적으로 반박하지 않았지만, 더 많은 근거를 가져오라며 전쟁성 내부의 검토 사안으로 보류하라 지시했다.
전쟁성을 위시한 육군과 군정 계통 실무진들은 강경파와 의견을 같이해 '''"군부의 위신을 지키고 실질적 국방 취약점을 즉각 개선하도록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이들의 급진성에 동조하지 않는 대세적인 여론 조차도 동아프리카의 문제를 인지시키고 점진적으로 해소시켜야한다는 쪽이었다.

2026년 5월 6일 (수) 22:45 판

개요

노르말리자초네(이탈리아어: Normalizzazione)

배경

1936년 5월 5일 이탈리아 왕립군 총참모장 피에트로 바돌리오 원수가 이끄는 동아프리카 부대가 아디스아바바에 입성하며 '제2차 이탈로-에티오피아 전쟁'은 종결되었으나 침공 개시부터 누적되어온 보급과 인프라 부담을 견지한 바돌리오는 5월 8일 아디스아바바 입성 이후 군사 정리에 관한 비밀 각서(이탈리아어: Promemoria riservato sulla sistemazione militare successiva all’ingresso in Addis Abeba)를 로마로 송신해 문제를 알리고자 했다.

5월 12일 전쟁성 국무차관 페데리코 바이스트로키는 5월 9일 바돌리오의 보고가 무솔리니에게 묵살 당하자, 전쟁성을 통해 "동아프리카의 주둔 소요가 본토 육군 재편을 방해하고 독일의 급진적인 대외 정책이 오스트리아와 브레너 고개 방면을 위협할 시에 대응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무솔리니는 바이스트로키의 경고를 공식적으로 반박하지 않았지만, 더 많은 근거를 가져오라며 전쟁성 내부의 검토 사안으로 보류하라 지시했다.

전쟁성을 위시한 육군과 군정 계통 실무진들은 강경파와 의견을 같이해 "군부의 위신을 지키고 실질적 국방 취약점을 즉각 개선하도록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이들의 급진성에 동조하지 않는 대세적인 여론 조차도 동아프리카의 문제를 인지시키고 점진적으로 해소시켜야한다는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