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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대게르만국|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발발하여, 독일{{D}}[[이탈리아 제국|이탈리아]]{{D}}[[대일본제국|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미합중국|미국]]·영국·[[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중화민국 항일통합국민정부|중국]]·프랑스가 이끄는 연합국이 맞서싸운 전쟁이다. 전쟁 중반 튀르키예가, 말기에는 스페인이 추축국에 가담하며 전선은 더욱 확대되었고, 1949년 소련의 항복과 미국의 종전 조약 서명으로 총 10년간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 |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대게르만국|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발발하여, 독일{{D}}[[이탈리아 제국|이탈리아]]{{D}}[[대일본제국|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미합중국|미국]]·영국·[[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중화민국 항일통합국민정부|중국]]·프랑스가 이끄는 연합국이 맞서싸운 전쟁이다. 전쟁 중반 튀르키예가, 말기에는 스페인이 추축국에 가담하며 전선은 더욱 확대되었고, 1949년 소련의 항복과 미국의 종전 조약 서명으로 총 10년간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 | ||
== 배경 == | |||
=== 유럽 === | |||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지정학적 지도를 근본에서부터 뒤바꿔놓았다. 동맹국이 패배하면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이 소멸했으며, 1917년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가 러시아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비에트 연방]]이 수립되었다. 전쟁은 약 1,7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유럽 전역에 전례 없는 규모의 물리적·심리적 상흔을 남겼다.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루마니아, 그리스와 같은 승전국은 영토를 확장했고, 세 제국의 붕괴로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헝가리 등 새로운 민족국가들이 잇달아 독립했다. | |||
미래의 대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1919년 파리 강화회의 기간에 국제연맹이 수립되었다. 국제연맹의 목표는 집단안전보장, 육해군 군축, 평화적 협상과 중재를 통한 국제 분쟁 해결로 무력 분쟁을 막는 일이었다. 그러나 [[미합중국|미국]] 상원이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주도로 제안된 연맹 가입 의제를 부결하면서 국제연맹은 출발부터 결정적인 공백을 안게 되었다. 만장일치 규칙{{D}}군사 집행력 부재{{D}}유력국인 미국의 불참이 맞물리면서 국제연맹은 침략국을 실효적으로 제재할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 |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강한 평화주의 정서가 유럽 전역에 퍼졌음에도, 패전국과 불만을 품은 승전국 일부에서 민족통일주의 및 보복주의적 사고가 급격히 대두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에 본토 영토의 13%와 모든 식민지 상실, 군비 제한, 타국과의 합병 금지, 전쟁 책임 조항인 제231조에 기반한 막대한 배상금 부과를 강제했다. 특히 소위 ''''전쟁 죄책 조항''''은 독일인들의 깊은 굴욕감을 자극했고, 이에 대한 반발이 독일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주된 연료가 되었다. | |||
1918년에서 1919년 사이 11월 혁명으로 독일 제국이 붕괴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전간기 동안 새 공화국의 지지층과 이를 반대하는 우익 및 좌익 강경 반대파가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한편 [[이탈리아 제국|이탈리아]]는 협상국의 일원으로 승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여러 약속이 전혀 이행되지 않은 것에 분노했다. 1922년부터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국가 파시스트당]]은 대의민주정을 폐지하고 공산주의, 좌파, 자유주의 세력을 탄압하며 이탈리아를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선전으로 10월 28일에는 로마 진군을 통해서 정권을 장악했다. |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NSDAP)와 [[아돌프 히틀러]]는 1923년 독일 정부 전복 시도에서 실패했으나 결국 1933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라이히스탁이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면서 정부에 입성했다. 히틀러는 급진적이고 인종주의적 배경을 가진 세계 질서의 전환을 부르짖으면서 민주적 제도를 폐지하고 대규모 재무장에 들어갔다. 한편 프랑스는 동맹국을 잡아두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이탈리아가 전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협정을 맺었고 동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 식민지와 접하는 국경 지역을 일부 양도하는 결정을 내렸다. 1935년 초에는 자르 분지 지역이 독일과 합병되고 히틀러가 베르사유 조약의 무효를 선언하며 재무장 계획을 가속화하고 징병제를 도입하면서 긴장이 촉발되었다. | |||
영국{{D}}프랑스{{D}}이탈리아는 1935년 4월 군국화의 중요한 단계를 밟고 있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스트레사 전선''''을 결성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영국이 독일과 독자적인 해군협정을 맺어 독일에 대한 제한을 완화시켜 버렸다. 동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을 장악하려는 독일을 우려한 소련은 1933년 12월 19일 프랑스에게 접근해 상호원조조약의 초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프랑스 외무장관 피에르 라발은 상호원조조약이 국제연맹 제16조 및 로카르노 조약과 충돌하지 않도록 제한 조항을 삽입하려 했다. 소련은 이 조항을 거부했으나 체결 이전 최종적으로는 수용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우려한 미국은 같은 해 8월 중립법을 제정했다. | |||
1936년 3월 히틀러는 라인란트에 [[독일 국방군|독일군]]을 진주시켜 베르사유 조약과 로카르노 조약을 실제로 무력화시켰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에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으며, 이 유화적 태도는 히틀러에게 이후 더 대담한 도발을 감행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같은 해 10월 독일과 이탈리아가 로마-베를린 추축을 결성했다. 한 달 후 독일과 일본이 방공협정에 서명했으며, 이듬해 이탈리아도 서명하면서 추축국의 윤곽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 |||
== 비고 == | == 비고 == | ||
[[분류:역사적 사건]] | [[분류:역사적 사건]] | ||
2026년 5월 2일 (토) 02:20 판
개요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발발하여, 독일·이탈리아·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미국·영국·소련·중국·프랑스가 이끄는 연합국이 맞서싸운 전쟁이다. 전쟁 중반 튀르키예가, 말기에는 스페인이 추축국에 가담하며 전선은 더욱 확대되었고, 1949년 소련의 항복과 미국의 종전 조약 서명으로 총 10년간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
배경
유럽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지정학적 지도를 근본에서부터 뒤바꿔놓았다. 동맹국이 패배하면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이 소멸했으며, 1917년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가 러시아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이 수립되었다. 전쟁은 약 1,7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유럽 전역에 전례 없는 규모의 물리적·심리적 상흔을 남겼다.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루마니아, 그리스와 같은 승전국은 영토를 확장했고, 세 제국의 붕괴로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헝가리 등 새로운 민족국가들이 잇달아 독립했다.
미래의 대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1919년 파리 강화회의 기간에 국제연맹이 수립되었다. 국제연맹의 목표는 집단안전보장, 육해군 군축, 평화적 협상과 중재를 통한 국제 분쟁 해결로 무력 분쟁을 막는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이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주도로 제안된 연맹 가입 의제를 부결하면서 국제연맹은 출발부터 결정적인 공백을 안게 되었다. 만장일치 규칙·군사 집행력 부재·유력국인 미국의 불참이 맞물리면서 국제연맹은 침략국을 실효적으로 제재할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강한 평화주의 정서가 유럽 전역에 퍼졌음에도, 패전국과 불만을 품은 승전국 일부에서 민족통일주의 및 보복주의적 사고가 급격히 대두되었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에 본토 영토의 13%와 모든 식민지 상실, 군비 제한, 타국과의 합병 금지, 전쟁 책임 조항인 제231조에 기반한 막대한 배상금 부과를 강제했다. 특히 소위 '전쟁 죄책 조항'은 독일인들의 깊은 굴욕감을 자극했고, 이에 대한 반발이 독일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주된 연료가 되었다.
1918년에서 1919년 사이 11월 혁명으로 독일 제국이 붕괴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전간기 동안 새 공화국의 지지층과 이를 반대하는 우익 및 좌익 강경 반대파가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협상국의 일원으로 승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여러 약속이 전혀 이행되지 않은 것에 분노했다. 1922년부터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국가 파시스트당은 대의민주정을 폐지하고 공산주의, 좌파, 자유주의 세력을 탄압하며 이탈리아를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선전으로 10월 28일에는 로마 진군을 통해서 정권을 장악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NSDAP)와 아돌프 히틀러는 1923년 독일 정부 전복 시도에서 실패했으나 결국 1933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라이히스탁이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면서 정부에 입성했다. 히틀러는 급진적이고 인종주의적 배경을 가진 세계 질서의 전환을 부르짖으면서 민주적 제도를 폐지하고 대규모 재무장에 들어갔다. 한편 프랑스는 동맹국을 잡아두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이탈리아가 전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협정을 맺었고 동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 식민지와 접하는 국경 지역을 일부 양도하는 결정을 내렸다. 1935년 초에는 자르 분지 지역이 독일과 합병되고 히틀러가 베르사유 조약의 무효를 선언하며 재무장 계획을 가속화하고 징병제를 도입하면서 긴장이 촉발되었다.
영국·프랑스·이탈리아는 1935년 4월 군국화의 중요한 단계를 밟고 있는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스트레사 전선'을 결성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영국이 독일과 독자적인 해군협정을 맺어 독일에 대한 제한을 완화시켜 버렸다. 동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을 장악하려는 독일을 우려한 소련은 1933년 12월 19일 프랑스에게 접근해 상호원조조약의 초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프랑스 외무장관 피에르 라발은 상호원조조약이 국제연맹 제16조 및 로카르노 조약과 충돌하지 않도록 제한 조항을 삽입하려 했다. 소련은 이 조항을 거부했으나 체결 이전 최종적으로는 수용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우려한 미국은 같은 해 8월 중립법을 제정했다.
1936년 3월 히틀러는 라인란트에 독일군을 진주시켜 베르사유 조약과 로카르노 조약을 실제로 무력화시켰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에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으며, 이 유화적 태도는 히틀러에게 이후 더 대담한 도발을 감행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같은 해 10월 독일과 이탈리아가 로마-베를린 추축을 결성했다. 한 달 후 독일과 일본이 방공협정에 서명했으며, 이듬해 이탈리아도 서명하면서 추축국의 윤곽이 갖춰지기 시작했다.